문화생활/문화

도시의 고택 – 1. 나의 가장 젊은 날

집에는 사람이 쉼 없이 드나들어야 한다. 사람이 호흡하듯, 생명의 기(氣)가 흐르고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소통이 없으면 고인 물처럼 썩는다. 신선한 기운이 감도는 곳에 활력이 생겨나고 새로운 삶의 순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지금, 우리 집은 그렇지 못하다. 휑하니 공간은 넓고 인적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점점 변해갔다.

옛 부터 살던 집으로 아이들 셋을 포함, 다섯 식구의 삶이 호흡하던 곳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두 딸은 출가하였고 아들은 직장 따라 서울로 간지 오래다. 이젠 어느 새 노년이 되어버린 우리 부부만 산다. 여자와 집은 다듬어야 빛이 난다고 했다. 아이들이 떠난 집은 그렇지 못하다. 구석구석 낡은 곰팡내가 난다.

사흘 연휴, 서울의 큰 딸이 내려왔다. 외손자 남매를 데리고 함께 온 친정 나들이였다. 서울에 직장이 있는 아들도 함께 묻어왔다. 토요일에도 일을 해야 하는 사위는 일을 마치고 내려온다고 했다. 아내는 모처럼 만난 딸과 무슨 할 이야기가 그렇게 많은지 식탁에 붙어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수다를 떤다. 둘만 있던 집안이 갑자기 사람들로 시끌벅적하다.

집이 생동감 넘치고 아이들 목소리로 음습한 냄새를 훌훌 쓸어낸다. 모처럼 집에 훈기가 돈다. 아이들에게는 외갓집 나들이다. 어머니가 자란 집,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있다. 외가는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함이 있고 그들 어머니의 어린 시절의 추억이 서린 곳이다. 꿈과 함께 전설의 고향처럼 옛 정취가 고스란히 숨어있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의 외손자들에게는 외갓집의 좋은 추억을 남겨 주고 싶었다.

그들의 방문은 일 년에 두어 번으로 정해져 있다. 방학 때나 명절에 한 번 나들이를 오는 그들에게 좋은 추억을 남겨주고 싶지만 그저 마음뿐 그리 쉽지 않다. 자주 만날 기회가 없으니 대화의 소통문제가 첫째다. 겨우 용돈으로 미끼를 던지고 사귀어보려 애쓰지만 순간 뿐, 그 역시 잘 되지 않는다. 짝사랑처럼 일방적으로 손자들이 반가운 존재일 뿐이다.

만남은 함께하는 사람들이 즐거워야 한다. 아들이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느라 딸네 집에서 몇 년간 신세를 졌다. 그는 붙임성이 좋다. 그 인연으로 외손자 녀석들이 어린 시절부터 외삼촌인 아들을 무척 잘 따라 아이들을 잘 데리고 놀아 준다. 외삼촌이 외갓집의 주인 노릇을 톡톡히 잘 해주는 것이 다행스러울 뿐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이튿날은 비가 왔다. 역시 아들의 주선으로 외손자들을 위해 비오는 바닷가의 추억을 만들기 위해 갔다. 싱싱한 회도 즐기고 바다 갈매기들과 함께 어울려 그들에게도 인상적인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클레만타인 노래의 전설과 아들은 그들의 학창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외갓집의 추억을 쌓아가고 있었다.

아쉽게도 다음 날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산으로 가기로 한 계획은 취소되고 말았다.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서로 붙어 법석을 떨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잘 놀 때는 귀엽기도 하고 보기도 좋았으나 집안에 묶여 식상해 진 아이들이 서로 싸우고 우왕좌왕 할 때는 노경의 아내는 정신 차리지 못했다. 평소에 없던 일이니 귀찮고 난감한 표정이 역력했다.

둘만 있던 집의 리듬이 완전히 깨어진다. 아이들이 컴퓨터 오락을 한다고 법석댄다. 집안의 있는 모든 가구들을 흩어 놓고 거실을 함부로 뛰어다니니 평소의 삶의 리듬과는 거리가 너무나 멀다. 아무래도 불편하고 아이들과의 생활이 낯설고 조용하던 하루 삶의 리듬을 완전히 깨트리니 이에 적응하지 못하게 된 노친들이다.

아이들은 싸우면서 큰다고 한다. 그들에게서의 싸움은 새로운 에너지의 발산 방법이기도 하다. 싸운 뒤는 또 언제 싸웠느냐는 듯이 금방 화해하고 다시 붙어서 논다. 그런 모습이 그들에게는 일상의 자연스러운 한 과정이요 방편일 뿐이다. 그럼에도 아내는 우리 아이들이 다투면서 자라던 그 시절을 까맣게 잊고 귀찮아한다.

아이들은 자라고 노인들은 늙어 간다. 아내는 손자들이 시끄럽고 분주한 행동을 듣고 보는 것을 견디기 힘들어 한다. 신체적 에너지가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인가. 부모가 된 우리의 아이들이 마흔 나이에 가까워졌다. 윤회의 법칙이다. 그네들이 우리 자리를 밀고 올라와 있으며, 우리는 결국, 우리의 부모세대로 어느새 와 있다.

아이들은 활력이 넘치지만 노인들은 시력은 나빠지고 체력이 떨어진다. 어쩔 수 없는 자연 현상이요, 세월의 교훈이다. 이 대자연의 흐름은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순환법칙이니 피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그새 불과 몇 십 년의 세월이 흘러, 이미 세대교체가 이루어져 있으니 세월부대인歲月不待人이라 한 말이 새삼 와 닿는다.

애완견 왕눈이도 그랬다. 두 아이들이 와서 처음에는 꼬리를 치면서 함께 좋아했다. 하지만 녀석을 끝없이 못살게 서로 함께 안고 구르니 점점 힘겹고 귀찮아서 져서 피할 곳을 찾아 헤매다가 마침내 지쳐서 헉헉댄다. 아마 왕눈이도 아내를 닮아 손자, 손녀들이 계속 치근대니 겁이 나고 얼른 갔으면 싶은가보다.

살아가는 많은 인연들 속에 모든 것이 나를 중심으로 해서 이 사회가 돌아가는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생각이 다르고 생활습관이 다를 경우 심한 반목을 느끼거나 불편을 겪을 수도 있다. 많은 대중 속에 때로는 느끼는 나 혼자 외톨이가 되는 경우에 탈출하고 싶은 기분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

같은 공간을 함께 숨 쉬고 싶지 않은 상대도 있다. 이야기가 통 할 수 없고 반목하거나 말하는 의견에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럴 경우는 선택에 별 문제가 없다. 피하거나 상대를 멀리하면 될 일이다. 오리 속의 백조 이야기가 있다. 그럴 경우는 참거나 기다리거나 함께 어울리지 않으면 될 일이다.

다음 날도 비가 내렸다. 사위는 내려오는 것을 포기했다. 사흘째가 되니 아이들도 점차 저희들 집이 그리운가 보다. ‘오면 반갑고 갈 때는 더욱 더 반갑다’고 했던가. 너무 잘 와 닿은 말이기에 슬며시 웃을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외갓집의 추억 한 가지라도 담아가는지 모를 일이다.

예약한 비행기가 짙은 안개로 뜨지 않았다. 대구까지 급히 차를 몰아가서 열차 시간에 맞춰 데려다 줄 수 있었다. 애들이 갔다. 거실 큰 유리창에 그들의 흔적, 그림 낙서가 남았다. 우리들의 초상화도 있고 뛰어놀던 모습도 있었다. 지우지 않았다. 그것을 보며 그들을 떠올린다. 떠들던 모습이 생생하지만 벌써 지나가버린 시간의 흔적일 뿐이다.

아내는 전화로 또 손자들이 보고 싶다고 노래할 것이다. 도시의 고택은 다시 침묵하고 노친 네들과 함께 낡아가며 정적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1943년 9월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났다. 1965년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화공과를 졸업하였으며 1967년 군제대 후 울산 한국비료공업주식회사에 입사하여 울산에 둥지를 틀었다. 그 뒤 동서석유화학(주)과 가원산업(주)으로 회사를 옮겨 엔지니어로 근무하다 1988년 직장생활을 청산하였다.
이후 화공약품 제조, 도소매업인 영남화공약품(주)을 시작으로 자영업에 발을 들여놓았고, 폐기물 처리업체인 (주)삼우이엔텍을 인수,운영하다가 정리하였다.
1995년 7월 다시 건축자재 제조 및 건설업체인 한국하트랜드(주)와 (주)우주를 설립,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2013년 계간 <<동리목월>>에 수필 [일장 일막]으로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하였고, 2012년 JTI문학상, 2013년 등대문학상, 2013 2014년 대구일보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2회), 2015 2017년 매일신문 시니어문학상(2회) 등을 수상하였다.
현재 울산문인협회, 울산수필동인회, 울산남구문학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E-mail : domy1@hanmail.net

도무웅

도무웅